백잔(百殘: 백제)과 신라(新羅)는 예로부터 속민(屬民: 같은 민족인 예속 국가)으로 고구려에 조공(朝貢)하였는데,
왜(倭)가 신묘년(辛卯年, 391년)에 바다(海)를 건너와 백잔(百殘: 백제)・가야(伽倻)・신라(新羅)를 공격(破)하며 신민(臣民 : 신하국가 = 식민지국가)으로 여기니 (= 생각하니 = 삼으려 하니), (※ 임나일본부설 주장 빌미) 영락 6년 병신년(丙申年, 396年)에 왕이 몸소 대군을 이끌고 잔국 (殘國: 일본이 유린 중인 백제 지역)을 토벌하였다.
ps.
0.
고구려가 백제를 백잔 (= 백제 잔당)이라 부르는 이유는
백체 근초고왕이 고구려에 쳐들어와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을 죽였기 때문임.
PS. 일부 사학자는 중국 대륙쪽에 있던 백제를 본(=first) 백제로 보고, 한반도 있는 백제를 잔(=second) 백제라고 얕잡아 봐서 그렇게 적은 거라 주장하기도.....
1. 빨간색 : 비석이 마모되어 안 보이는 글자인데, 정황상 저 글자가 아닐까 추측. 파란색 : 글자 부분은 제가 부드러운 해석을 위해 추가.
2.
伽倻新羅 (가야신라) 대신 任那加羅 (임나가라: 임나국)라는 설도 있지만, 광개토대왕 치적을 빛내고 백제 정벌 당위성을 생각하면 가야신라가 타당. 왜냐면, 앞서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의 속민임을 전제로 깐 진술이기 때문.
3.
大軍 (대군) 대신 바다 건너온 왜를 공격 위한 水軍(수군)이라는 설도 있지만, 광개토대왕의 위엄과 백제를 친히 정벌하는 사정을 생각하면 대군이 더 타당.
破(..공격하다. ..격파하다) 주체를 倭(왜)가 아닌 생략된 주어 (광개토대왕)이라 주장하는 설.
하지만, 이 해석은 앞뒤 문맥 상 맞지 않음. 왜냐면, 첫째, 백제・신라를 고구려 속민이라 했는데, 倭(왜)에게 공격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신민으로 강등하는 건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와 전혀 맞지 않음. 둘째, 이미 격파했는데, 뒷 문장에서 또 다시 대군을 보내 토벌하는 상황과도 전혀 맞지 않음.
[자연스런 비문해석]
광개토대왕 비문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므로,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빛나게 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
백제는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고국원왕)을 죽인 철천지원수 국가인 적국이나
광개토대왕의 민족적 포용력 부각과 백제 정벌 정당성 위해서 고구려 속국 상정 후,
고구려와 맞서던 백제를 주적으로 삼기보단 백제가 끌어들인 왜를 주적으로 삼아 토벌 대상을 백잔(百殘:백제) 대신 잔국(殘國: 백제 주둔 중인 왜)으로 표현하고. 속국이자 적국인 백잔(百殘:백제)의 아신왕을 관용으로 용서해주는 미덕을 기술.
PS.
할아버지 (고국원왕) 복수, 영토 및 조공 확보.... 이런 이유로 백제 정벌 했다고 하면 광개토대왕 업적의 품격에 안 맞음. ㅡㅡ; 또한,
아무런 이유 제시 없이 그냥 백제를 정벌한 사실만 적어도 쪽팔림. ㅡㅡ; 왜냐면, 같은 민족을 죽이는 쪼잔한 왕이 되니까... 결국,
백제가 끌어들인 왜를 정벌 구실 삼아 백제를 정벌하는 게 여러 모로 좋았던 것임.
그런데, 왜의 능력치가 낮으면, 백제 정벌할 명분이 안 섬. 속국이 나서면 되니까.. 그래서,